민감국 지정 논란, "보안 때문"이라는 외교부 설명에 남는 의문

민감국 지정 논란, "보안 때문"이라는 외교부 설명에 남는 의문

민감국 지정 논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25년 3월,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ensitive and Other Designated Countries List, SCL)'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국내외에서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이 결정은 조 바이든 행정부 말기인 2025년 1월 초에 내려진 것으로, 4월 15일부터 공식 시행될 예정입니다.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원자력,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이 제한될 가능성이 제기되며, 이는 한미 동맹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외교부는 뒤늦게 이 사안을 파악하고, 3월 17일 "외교정책상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 관련 문제 때문"이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 해명은 구체적인 근거와 명확한 배경 설명이 부족해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낳고 있습니다. 미국 측에서도 한국과의 기술 협력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정부의 늦장 대응과 모호한 설명은 논란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교부의 해명, 무엇이 문제인가

외교부는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가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보안 문제"와 관련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체적으로, 한국 연구원들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 방문이나 공동 연구 과정에서 보안 규정을 위반한 사례가 적발되었다는 취지의 설명을 미국 측으로부터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규정이 위반되었는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세부 사항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호한 입장은 국민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특히, 정부가 이 사안을 1월 초 결정 이후 두 달 가까이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은 외교적 대응 능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3월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비공식 경로로 최근에야 관련 동향을 알게 됐다"고 밝히며,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한 상태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뒤늦은 대응이라는 지적이 피할 수 없습니다.

또한 외교부는 과거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한국이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되었다가 1994년 협의를 통해 제외된 사례를 언급하며, 이번에도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지정 이유가 다를 가능성이 높고, 국제 정세와 기술 환경이 크게 변한 상황에서 단순히 과거 사례를 근거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핵무장론과 정치적 배경, 무관한가

외교부는 이번 지정이 외교정책이나 정치적 요인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다른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확산된 '핵무장론'이 미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하거나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발언한 바 있으며, 2024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을 허용할 것"이라는 주장이 국내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2024년 12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로 인한 정치적 혼란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로이터는 당시 계엄령 선언과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하며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을 보도했습니다. 외교부는 이를 부인하지만, 미국 에너지부가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왜 갑작스럽게 한국을 리스트에 추가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어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핵무장론이나 정치적 불안정이 실제 원인이라면, 단순히 "보안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한미 관계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큽니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북한, 이란 등과 유사한 범주에 포함시켰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기술 협력에 미칠 영향은

민감국가로 지정되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나 관련 시설에 한국 연구원들이 접근하려면 특별 승인을 받아야 하며, 공동 연구나 기술 교류에도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목록에 포함된 국가들과도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며 제한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행정적 절차가 복잡해지며 협력 속도가 느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원자력과 인공지능 분야에서 한미 간 협력은 한국의 산업 발전과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미국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와 원전 기술을 둘러싼 분쟁을 겪고 있으며, 이 문제가 이번 지정과 연관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정부 안팎에서는 웨스팅하우스와의 기술 갈등이 보안 문제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지만, 외교부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연관성은 모른다"고 답변했습니다.

한미 간 기술 협력에 제약이 생기면 한국의 첨단 산업 경쟁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원자력 협력이 제한된다면, 안보적으로도 부정적인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됩니다.

정부의 대응, 어디로 가야 하나

정부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미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총동원하고 있습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3월 17일 대외경제현안간담회에서 "한미 간 과학기술 및 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미국 측에 적극 설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의 면담을 위해 조만간 방미할 계획입니다.

그러나 미국 에너지부 내 특정 부서가 내부적으로 관리하는 목록이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결정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내려진 것이어서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의가 얼마나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입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순히 해명을 넘어 구체적인 협상 전략과 명확한 요구 사항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한 이번 사태는 정부의 외교적 민첩성과 정보 수집 능력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습니다. 두 달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점, 그리고 모호한 해명으로 일관한 점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한국이 명단에서 제외되도록 하는 동시에,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외교 시스템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아 있는 의문과 앞으로의 과제

외교부의 "보안 때문"이라는 해명은 일단 논란을 진정시키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구체성이 부족해 오히려 의문을 키우고 있습니다. 정말로 연구소 보안 문제가 원인이라면, 어떤 사례가 있었는지, 왜 한국만 타깃이 되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만약 정치적 요인이나 핵무장론이 배경이라면, 정부는 이를 인정하고 이에 맞는 외교적 대응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미 동맹은 단순히 군사적 협력을 넘어 기술과 경제 분야에서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번 민감국 지정 논란이 양국 관계에 어떤 흔적을 남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정부가 신속하고 투명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한국의 외교적 위상과 안보, 산업 경쟁력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부와 국민 모두가 이번 논란을 통해 한미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되짚어보며, 보다 단단한 협력 기반을 만들어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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