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 수성에 성공…법원, 집중투표제 인정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둘러싼 긴장감 넘치는 대결이 법원의 최근 판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법원이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도입된 집중투표제의 효력을 유지한다고 결정하면서, 최윤범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에 일단 성공한 모양새입니다. 이번 결정은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하 영풍·MBK)과의 치열한 분쟁 속에서 나온 결과로, 앞으로의 경영권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법원의 판결 내용을 중심으로 고려아연 사태의 배경과 전망을 살펴봅니다.
법원 판결의 핵심 내용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2025년 3월 7일, 영풍·MBK가 제기한 ‘임시 주주총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습니다. 법원은 지난 1월 31일 열린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통과된 여러 안건 중 집중투표제 도입만 효력을 유지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사 수 상한 설정, 액면분할, 사외이사 이사회 의장 선임, 배당기준일 변경, 분기배당 도입 등 나머지 안건은 모두 효력이 정지되었습니다.
특히 법원은 고려아연이 임시 주총 전날 영풍의 의결권을 제한하기 위해 사용한 ‘상호주 제한’ 조치가 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상호주 제한은 손자회사 SMC가 영풍 지분 10.32%를 취득하면서 상법에 따라 영풍의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25.42%)을 무력화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SMC가 상법상 주식회사로 보기 어렵고, 유한회사 성격이 강하다며 이 조치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집중투표제는 의결권 제한과 관계없이 69.3%의 찬성률로 가결되었기에 효력이 유지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집중투표제란 무엇인가
집중투표제가 이번 사태의 핵심으로 떠오른 만큼, 이 제도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출할 때, 각 주주에게 보유 주식 1주당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 3명을 뽑는 경우, 100주를 가진 주주는 300표의 의결권을 갖게 됩니다. 이 표를 한 명의 후보에게 몰아줄 수도 있고, 여러 후보에게 나누어줄 수도 있습니다.
이 제도는 소액주주가 대주주에 비해 불리한 일반투표제의 단점을 보완합니다. 일반투표제에서는 지분율이 높은 대주주가 이사 전원을 독식할 가능성이 크지만, 집중투표제에서는 소액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집중시켜 이사 선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고려아연의 경우, 최윤범 회장 측이 다수의 소액주주를 기반으로 집중투표제를 통해 경영권을 지키려는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경영권 분쟁의 배경과 진행 과정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2024년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영풍(최대 주주)과 MBK파트너스가 연합을 이루어 고려아연의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입하며 이사회 장악을 시도했습니다. 이에 맞서 최윤범 회장은 자사주 매입, 유상증자, 집중투표제 도입 등 다양한 방어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특히 2024년 10월에는 2조 5,009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며 영풍·MBK의 지분율을 희석하려 했으나, 주주 가치 훼손 논란으로 시장의 반발을 샀습니다.
2025년 1월 23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는 분쟁의 분수령이었습니다. 최 회장 측은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 수 제한(19명 이하)을 안건으로 상정해 통과시켰고, 영풍·MBK가 추천한 14명의 이사 선임은 부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영풍·MBK는 상호주 제한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이번 판결로 의결권이 되살아나며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법원 결정이 고려아연에 미치는 영향
이번 법원 결정은 고려아연 경영진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집중투표제 효력이 유지되면서 당장 경영권을 잃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영풍·MBK의 의결권이 복원됨에 따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치열한 표 대결이 불가피해졌습니다. 현재 고려아연 이사회는 12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5명의 임기가 3월 17일 만료됩니다. 영풍·MBK는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 위해 신규 이사 선임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집중투표제가 다음 주총부터 적용되면, 영풍·MBK가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표를 분산해야 하는 반면, 최 회장 측은 소액주주를 결집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습니다. 이는 최 회장 측에 다소 유리한 구도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러나 영풍·MBK가 보유한 46.7%의 지분율(의결권 기준)은 여전히 강력한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망과 변수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은 3월 말로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입니다. 법원의 결정으로 영풍·MBK는 이사회 개편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얻었지만, 집중투표제라는 방어막이 작동하면서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은 소액주주의 표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편, MBK의 최대 주주 기업인 홈플러스가 최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MBK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는 영풍·MBK 연합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최 회장 측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 우호 지분 확보 등 추가 방어 전략을 구사할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번 분쟁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잭 넌 하원의원은 중국과 연계된 기업이 MBK를 통해 고려아연을 장악할 경우, 핵심 광물 공급망에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이는 고려아연이 단순한 기업 분쟁을 넘어 글로벌 산업계에 미치는 파급력을 보여줍니다.
결론: 긴장감 속 새로운 국면
법원의 이번 판결로 고려아연은 경영권 방어에 일단 숨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영풍·MBK와의 대결이 끝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치열한 싸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집중투표제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최윤범 회장 측과 의결권을 되찾은 영풍·MBK 연합의 다음 행보가 주목됩니다. 대한민국 비철금속 산업의 핵심 기업인 고려아연의 미래는 이제 주주들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