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로 빛난 가수, 故휘성을 기억하며

의지로 빛난 가수, 故휘성을 기억하며

가난 속에서 피어난 음악의 꿈

故휘성, 본명 최휘성은 1982년 2월 5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자란 그는 음악에 대한 열망을 키웠습니다. 자서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남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그는 삐삐를 빌려 썼고, 음악 학원비 13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님께 말하기를 망설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그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시절 댄스 팀에 들어가며 연예계와 첫 인연을 맺었고, 1997년부터 1999년까지 S.E.S.와 같은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백댄서로 활동하며 꿈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그는 A4라는 4인조 그룹의 멤버로 잠시 활동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팀은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련은 그를 꺾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보컬 연습에 매진하며 실력을 갈고닦았고, 2000년 강변가요제 출전을 계기로 가수 이상우의 눈에 띄어 연습생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그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R&B의 새로운 지평을 연 데뷔

2002년, 휘성은 첫 앨범 'Like a Movie'를 통해 솔로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타이틀곡 '안되나요'는 한일 월드컵 열풍 속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그를 스타덤에 올렸습니다. 특히 2집 'With Me'와 3집 '불치병'은 그의 대표곡으로, 한국 R&B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의 노래는 화려한 기교와 감성적인 멜로디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발라드 가수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며 '어려운 노래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데뷔 초기부터 라이브 무대를 고집했던 그는 선천적으로 약한 기관지와 만성 비염에도 불구하고 성대결절을 감수하며 노래에 전념했습니다. 이런 노력은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고, 그의 음악이 단순한 노래 이상의 의미를 갖게 했습니다. 이후 소속사를 옮기며 퍼포먼스 중심의 음악으로 변화를 꾀했지만, 그의 뿌리 깊은 R&B 감성은 변함없이 이어졌습니다.

작사와 프로듀싱으로 넓힌 음악 세계

휘성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작사와 작곡, 프로듀싱까지 아우르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 성장했습니다. 윤하의 '비밀번호 486', 지나의 '꺼져줄게 잘살아', 에일리의 '헤븐' 등 수많은 히트곡에 그의 손길이 닿아 있습니다. 특히 에일리의 데뷔곡 '헤븐'을 프로듀싱하며 신예 가수의 성공을 이끌었고, 티아라와 트와이스 같은 아이돌 그룹의 곡에도 참여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뮤지션들과의 협업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2009년 영국 R&B 가수 크레이그 데이비드의 'Insomnia'를 리메이크했고, 2010년에는 스티브 바라캇과 함께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을 작업하며 아시아 가수로는 드문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런 활동은 그의 음악적 재능이 국경을 넘어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시련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의지

휘성의 삶은 빛나는 성공만큼이나 깊은 시련으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2011년 군 복무 중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로 결론 났습니다. 하지만 2020년 또다시 수면 마취제 관련 사건으로 법적 처벌을 받으며 큰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그는 방송 출연이 제한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려 노력했고, 2023년에는 SNS를 통해 오랜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으며 재기를 다짐했습니다.

2025년 3월, 그는 생일 팬미팅을 열고 팬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또한 KCM과 함께 3월 15일 대구에서 합동 콘서트를 앞두고 다이어트를 마무리하며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3월 10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며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경찰은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며, 국과수의 1차 소견으로는 원인이 불분명하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남긴 음악과 추억

휘성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연예계와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가수 윤민수는 "그곳에서 마음 편히 노래하길"이라며 애도했고, 옥주현은 "화산 같은 열정으로 음악했던 너를 기억한다"고 회상했습니다. 래퍼 창모와 팔로알토 역시 그의 음악이 자신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습니다. 팬들은 그의 인스타그램과 음원 사이트에 추모 글을 남기며 '불치병', '안되나요' 같은 곡들을 다시 들으며 그를 기리고 있습니다.

휘성은 가난과 시련을 딛고 일어선 의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음악은 R&B라는 장르를 한국 가요계에 뿌리내리게 했고,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었습니다. 비록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그가 남긴 노래는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편히 쉬기를, 그리고 그곳에서도 음악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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