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의 고통 나누기: 정치경제학적 접근

현대 사회는 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저성장 체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과거의 고도 성장 시기가 끝나고, 이제는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갈등과 분배의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을 통해 고통을 어떻게 나누고 조정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저성장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고, 고통 분담의 정치경제학적 의미를 분석하며, 현실적인 해결 방안을 탐구합니다.

저성장 체제는 경제 성장률이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산업화 이후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던 20세기와 달리,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1990년대까지 연평균 7~8%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2~3%대로 하락했습니다. 이는 기술 혁신의 한계, 인구 고령화, 글로벌 시장의 포화 등 다양한 요인에 기인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숫자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 일자리 창출이 줄어들고,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며, 사회적 긴장이 높아집니다. 특히 자원이 부족해질수록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이 빈번해지며, 이는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저성장은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도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성장 시대에는 경제적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릅니다. 이를 ‘고통 분담’이라 부르는데, 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특정 집단에 전가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감내하려는 노력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세금 인상, 복지 축소, 임금 조정 등은 모두 고통 분담의 일환으로 논의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고통 분담이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에서 기업 구제와 금융 안정화에 막대한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지만, 그 부담은 주로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세금으로 충당되었습니다. 반면, 상위 계층의 자산 가치는 빠르게 회복되며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는 고통 분담이 정치적 힘의 균형에 따라 좌우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정치경제학은 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저성장 체제에서 고통 분담을 둘러싼 갈등은 이 두 영역이 얽히며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복지 예산을 삭감하면, 저소득층은 즉각적인 생계 위협을 느끼지만, 고소득층은 이를 크게 체감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책 결정권을 가진 정치 엘리트와 경제적 자원을 쥔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며, 일반 시민의 목소리는 묻히기 쉽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2020년대 들어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연금 개혁 논의가 본격화되었지만,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합의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젊은 세대는 연금 보험료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고령층은 수령액 감소를 반대합니다. 이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경제적 분배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과거의 사례는 저성장 시대의 고통 분담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은 뉴딜 정책을 통해 공공사업과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하며 경제 회복과 분배 정의를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반면, 같은 시기 유럽의 일부 국가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하며 사회 갈등을 억눌렀습니다.

최근에는 2010년대 유로존 위기가 주목할 만합니다.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구제 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가혹한 긴축 정책을 시행했지만, 이는 실업률 급등과 빈곤층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북유럽 국가들은 복지 시스템과 노사 협력을 통해 위기를 완화하며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고통 분담의 방식이 국가별 정치적 전통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국은 저성장 체제에 진입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2023년 경제 성장률은 1.4%에 그쳤으며, 2024년에도 2%를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고령화 속도, 수출 의존도,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특히 청년 실업률이 2023년 기준 6.7%에 달하며,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안이 제안됩니다. 첫째, 재정 정책을 통해 공공 일자리와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 활력을 유지했습니다. 둘째, 기업과 노동자 간 협력을 통해 임금 격차를 줄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 제도는 참고할 만한 모델입니다. 셋째, 세제 개혁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촉진해야 합니다. 이는 단기적인 반발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사회적 안정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성장 시대의 고통 분담은 단기적인 해결책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해법을 모색하려면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탄소 중립과 같은 환경 정책은 초기에는 비용 증가를 동반하지만, 장기적으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유럽연합의 그린 딜은 이러한 방향성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디지털 전환을 활용한 혁신도 중요합니다. 한국은 IT 인프라가 뛰어나므로, 이를 바탕으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하면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성장률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고용의 질을 개선하며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저성장 체제에서 고통 분담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사회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가 조화를 이루며, 모든 계층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분배 원칙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의 참여와 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한국 사회가 저성장의 도전에 현명하게 대응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