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수 감소에도 사교육비 급등
2024년 대한민국의 사교육비가 29조 2000억 원을 돌파하며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는 전년도인 2023년 27조 1000억 원 대비 2조 1000억 원, 약 7.7% 증가한 수치입니다. 놀라운 점은 학생 수가 1년 사이 521만 명에서 513만 명으로 8만 명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출이 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저출산으로 인한 학령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원 및 과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4년간 사교육비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습니다. 2021년 23조 4000억 원, 2022년 26조 원, 2023년 27조 1000억 원에 이어 2024년 29조 2000억 원으로 매년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정부가 사교육 억제를 목표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로 이어집니다.
사교육 참여율과 비용의 상승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 비율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2024년 조사 결과, 초·중·고교생 중 80%가 사교육을 받고 있으며, 이는 전년 대비 1.5% 포인트 증가한 수치입니다. 특히 초등학생의 참여율은 87.7%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은 78.0%, 고등학생은 67.3%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사교육이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여겨지는 현실을 반영합니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증가했습니다. 전체 학생 기준으로는 47만 4000원으로 전년 대비 9.3% 올랐으며, 사교육에 참여하는 학생만 놓고 보면 59만 2000원으로 7.2% 상승했습니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 44만 2000원, 중학생 49만 원, 고등학생 52만 원으로 모든 단계에서 비용이 늘어났습니다. 이는 학원 단가 인상과 교과목별 세분화된 강의 증가 등이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정부 정책과 사교육 시장의 엇갈린 행보
정부는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늘봄학교와 같은 공교육 내 돌봄 서비스 확대와 수능에서 초고난도 문항 배제를 추진하며 학원 의존도를 낮추려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책 의도와 달리 움직였습니다. 2023년 윤석열 대통령은 사교육과 공교육 간 카르텔 문제를 지적하며 강력한 대책을 주문했지만, 이후 1년간 학원 매출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대형 학원과 교사 간 부적절한 거래를 적발하고 국세청 및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진행했으나, 사교육 시장 규모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286억 원의 탈세 추징액만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거대한 시장에 비하면 미미한 성과로, 실효성 논란이 제기됩니다. 오히려 학원 업계는 정부의 단속을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며 더 큰 신뢰를 얻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의대 증원과 대입 불확실성의 영향
2024년 사교육비 증가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의대 정원 확대가 거론됩니다. 정부가 의대 모집 인원을 늘리며 상위권 학생들 사이에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이는 고액 과외와 입시 학원 수요로 이어졌습니다. 교육부는 의대 준비가 전체 사교육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보지만, 학부모와 전문가들은 대입 제도 변화와 불확실성이 학원가 열풍을 부추겼다고 입을 모읍니다.
특히 고등학생의 사교육비 증가율이 5.8%로 나타난 점은 입시 경쟁의 심화를 시사합니다. 서울 강남과 대치동 같은 지역에서는 과목당 월 300만 원을 넘는 고액 강의가 성행하며, 재수생을 위한 기숙 학원 비용도 300만 원대를 웃돌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공교육이 입시 준비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불신이 여전히 깊다는 방증입니다.
소득 격차와 지역별 차이
사교육비 지출은 소득 수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월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는 1인당 67만 6000원을 지출하며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300만 원 미만 가구는 20만 5000원으로 약 3.3배 격차가 났습니다. 참여율 역시 고소득층이 87.6%로 저소득층(58.1%)보다 월등히 높았습니다. 이는 교육 기회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1인당 67만 3000원으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으며, 전남은 32만 원으로 가장 낮았습니다. 서울의 사교육 참여 학생 기준 비용은 78만 2000원에 달해 지역 간 양극화도 두드러졌습니다. 이는 수도권 중심의 학원 인프라와 교육열이 비용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나타냅니다.
유아 사교육의 과열 현상
사교육 열풍은 초·중·고교생에 그치지 않고 미취학 아동으로까지 확산되었습니다. 2024년 처음 발표된 유아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6세 미만 아동의 1인당 월평균 비용은 33만 2000원에 달했습니다. 특히 영어 유치원으로 불리는 학원의 경우 월 154만 5000원을 기록하며 가장 큰 지출 항목으로 떠올랐습니다.
정부는 유아 사교육 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해 단속을 강화했지만, 실효성은 미미하다는 지적이 이어집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4세·7세 고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기 교육에 대한 압박이 커지며, 사교육 의존도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공교육 신뢰 회복의 과제
사교육비 증가의 근본 원인으로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꼽힙니다. 방과후학교 참여율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고, 기초학력 미달 비율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사교육비 경감을 위해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입시 제도의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의 사교육 시장은 학생 감소라는 구조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성장세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교육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와 경쟁의 문제로 이어집니다. 정부가 내놓을 다음 대책이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