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산불, 초기 진화의 골든타임을 놓치다
2025년 3월, 경북 의성군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은 나흘째 이어지며 지역 주민과 당국을 긴장 속에 몰아넣습니다. 불길은 초속 15m에 달하는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졌고,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서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산림청과 소방 당국은 헬기와 인력을 총동원했지만, 화선이 100km 이상으로 늘어나며 진화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의성 산불의 초기 대응 실패 원인과 그 중심에 있는 주력 헬기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산불 진화에서 초기 대응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불이 시작된 직후 몇 시간, 이른바 '골든타임' 안에 불길을 잡지 못하면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의성 산불의 경우, 발화 초기 강풍과 연무가 겹치며 상황이 악화되었고, 공중 진화의 핵심 전력인 헬기의 효율적인 투입이 어려웠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산불 진화의 주축인 헬기 중 상당수가 가동 불가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주력 헬기 KA-32, 가동률 72%의 현실
산림청이 보유한 산불 진화용 헬기는 총 50대입니다. 이 중 핵심 기종으로 꼽히는 KA-32 카모프 헬기는 29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3천 리터 이상의 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대형 헬기로 산불 진화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중 8대, 약 28%가 현재 운항이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전체 헬기 중 실질적으로 활용 가능한 숫자는 42대에 불과하며, 그마저도 일부는 산불 취약 지역에 고정 배치되어 있어 즉각적인 이동이 어렵습니다.
KA-32 헬기의 가동 중단 사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여파로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긴 점에 있습니다. 이 헬기는 러시아製로, 전쟁 이후 국제 제재와 물류 문제로 인해 예비 부품 확보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미 지난해 상반기부터 일부 헬기가 정비를 받지 못해 전력에서 제외되었고, 이는 의성 산불과 같은 대규모 재난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드러났습니다.
항목 | 수치 |
---|---|
산림청 헬기 보유 대수 | 50대 |
KA-32 헬기 보유 대수 | 29대 |
가동 불가 KA-32 헬기 | 8대 (약 28%) |
실제 가동 가능 헬기 | 42대 |
의성 등 산불 현장 투입 헬기 | 33대 |
강풍과 연무, 헬기 투입의 이중고
의성 산불이 발생한 3월 22일, 현장에는 초속 5.6m 이상의 바람이 불며 불길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이후 바람은 최대 초속 15m까지 세졌고, 이는 헬기 운항에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강풍은 헬기의 안정적인 비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물을 투하해도 바람에 흩어져 효과가 반감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게다가 화선에서 뿜어져 나온 짙은 연무는 조종사의 시야를 가려 이륙조차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3월 23일 의성 산불 현장에서는 연무로 인해 투입된 헬기들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이는 헬기 운용의 기술적 한계와 자연 조건이 맞물린 결과로, 초기 진화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산림청은 연무와 강풍 속에서도 운항이 가능한 첨단 헬기 도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지자체 임차 헬기의 지원과 한계
산림청 헬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각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임차한 헬기를 투입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봄철 산불 조심 기간 동안 운영되는 지자체 헬기는 총 78대이며, 이 중 34대가 영남권 산불 진화에 동원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북도는 지난 23일 발생한 두 건의 산불에 임차 헬기 3대를 활용해 대응했고, 충북 옥천 산불에도 전북 헬기가 긴급 출동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임차 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합니다. 각 지자체가 보유한 헬기는 해당 지역의 산불 발생 시 즉시 복귀해야 하므로, 타 지역에서의 지속적인 지원이 어렵습니다. 또한, 임차 헬기의 경우 산림청 헬기에 비해 담수량이 적거나 노후된 기종이 많아 대형 산불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습니다. 의성 산불처럼 화선이 길고 불길이 거센 상황에서는 이러한 헬기의 효율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 규모와 장기화 우려
3월 25일 기준, 의성 산불의 진화율은 약 60%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피해 면적은 6,079㏊에 달하며, 화선 길이는 228km에 이릅니다. 이 중 불길이 잡히지 않은 구간은 102.8km로, 진화 작업이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민 1,554명이 대피소로 이동했으며, 94채의 시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안동 하회마을과 같은 세계문화유산 근처까지 불길이 번지며 문화적 손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산불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기상청은 당분간 백두대간 동쪽 지역의 건조한 날씨가 지속될 것으로 예보했으며, 비 소식은 3월 27일 이후에나 기대할 수 있습니다. 헬기와 인력의 피로도가 쌓이고 있는 가운데, 추가적인 자원 투입 없이는 불길을 완전히 잡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미래를 위한 대안 모색
의성 산불은 우리나라 산불 대응 체계의 취약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주력 헬기의 가동 불가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부품 수급난은 국제 정세에 의존하는 만큼, 대체 기종 도입이나 국산 헬기 개발과 같은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합니다. 또한, 연무와 강풍 속에서도 운항 가능한 첨단 헬기 도입은 초기 진화 성공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지자체와 산림청 간 협력 강화도 필수적입니다. 임차 헬기의 활용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별 헬기 배치와 운용 기준을 재정비하고, 산불 발생 시 신속한 자원 공유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나아가 산불 예방 교육과 감시 시스템을 강화해 초기 발화를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합니다.
의성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우리의 대응 능력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불길 속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더 나은 대비책을 마련한다면, 미래의 재난은 지금보다 덜 아프게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