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없는 키오스크 의무화, 왜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올까?

장벽 없는 키오스크 의무화, 왜 졸속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올까?

도입부: 키오스크, 편리함 뒤에 숨은 장벽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터치스크린 키오스크. 빠르고 간편하게 주문을 마칠 수 있어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편리함이 모두에게 공평한 걸까요? 시각장애인은 화면을 읽을 수 없고, 휠체어를 탄 사람은 버튼에 손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장벽 없는 키오스크'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이 정책이 오히려 소상공인과 장애인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왜 이런 비판이 나오는 걸까요? 이 글에서는 '장벽 없는 키오스크' 정책의 문제점과 그 이면을 구체적으로 파헤쳐봅니다.

장벽 없는 키오스크란 무엇인가

장벽 없는 키오스크, 흔히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라고 불리는 이 기기는 장애인과 고령자 등 정보 취약계층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무인 단말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 안내와 점자 블록을 제공하고,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화면 높이를 조절하거나 접근 공간을 확보한 기기입니다. 2023년 1월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라, 공공기관과 민간 사업장은 이러한 접근성을 갖춘 키오스크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정책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걸림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졸속행정 비판의 첫 번째 이유: 소상공인의 비용 부담

가장 큰 비판의 목소리는 소상공인에게서 나옵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일반 키오스크보다 가격이 훨씬 높습니다. 일반 키오스크가 100만 원대부터 시작한다면, 배리어프리 기능이 추가된 기기는 300만 원에서 많게는 700만 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설치 과정에서 바닥 공사나 전기 배선 정비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충청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대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기존 키오스크를 교체하려면 약 100만 원의 자부담이 필요하며, 추가 공사비까지 고려하면 부담이 배가 된다고 토로했습니다. 정부는 지원금을 제공한다고 하지만, 예산과 지원 규모가 한정적이어서 모든 소상공인이 혜택을 받기 어렵습니다.

특히 50㎡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은 상시 지원 인력이 있다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가 면제되지만, 이는 직원을 상시 고용해야 하는 또 다른 비용 부담으로 이어집니다. 소상공인들은 이미 코로나19 이후 매출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정책 시행이 생존을 위협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한 패스트푸드점 주인은 "키오스크 없이도 장애인 고객을 위해 직원이 직접 주문을 받아왔는데, 굳이 비싼 기기를 설치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현실은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구분 일반 키오스크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가격 100만 원~200만 원 300만 원~700만 원
주요 기능 기본 터치스크린, 결제 음성 안내, 점자, 높이 조절
설치 추가 비용 최소 바닥 공사, 배선 정비 등

두 번째 비판: 실효성 부족과 장애인의 실제 경험

장벽 없는 키오스크가 과연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26개 업종의 1,202개 키오스크 중 64.7%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이나 점자 기능을 전혀 갖추지 않았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화면 높이 조절 기능은 3.1%에 불과했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제공 기기는 단 1대뿐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의무화는 분명 필요한 조치로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장애인들의 경험은 정책의 기대와 괴리가 큽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손지민 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키오스크가 없는 식당을 외워서 찾아다닌다"고 밝혔습니다. 키오스크가 설치된 곳에서는 직원에게 메뉴를 하나하나 읽어달라고 부탁해야 하지만, 눈치가 보여 제대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주문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지체장애인 최순덕 씨 역시 키오스크 화면이 너무 높아 손이 닿지 않아 결국 직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사례들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설치된다 해도, 실제 사용 환경이 장애인의 필요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더 큰 문제는 키오스크의 표준화 부족입니다. 한국소비자원의 2022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84.8%가 업종별로 다른 키오스크의 조작 방식 때문에 불편을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배리어프리 기능이 추가된다고 해도, 기기마다 다른 인터페이스와 조작 방식은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들에게도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정책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단순히 기기 교체를 넘어, 통일된 사용자 환경과 직원 교육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 비판: 졸속으로 추진된 정책 설계

정책의 추진 과정도 비판의 대상입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은 2021년 7월에 통과되었고, 2023년 1월부터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민간 사업장에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되며, 기존 키오스크는 2026년까지 유예 기간이 주어졌습니다. 이런 점진적 적용은 소상공인에게 준비 시간을 준다는 취지지만, 반대로 정책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50㎡ 이하 소규모 사업장은 직원 지원이 있다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 설치 의무가 면제되는데, 이는 사실상 소규모 매장의 접근성 개선을 미루는 결과를 낳습니다.

또한 정책 설계 과정에서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힙니다. 2022년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중소기업벤처부는 예산 지원의 어려움을 이유로 적극적인 참여를 꺼렸다고 합니다. 소상공인과 장애인 단체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채 법안이 추진되면서,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실행 가능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한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법은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현장의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오해 바로잡기: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까?

많은 이들이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만 설치하면 장애인의 디지털 접근성 문제가 해결될 거라 오해합니다. 하지만 이는 단편적인 접근입니다. 키오스크의 하드웨어 개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음성 안내 기능이 있어도 메뉴 설명이 너무 빠르거나 불명확하면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공간이 확보되어도, 매장 입구에 턱이 있다면 애초에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키오스크의 접근성 수준은 100점 만점에 평균 59.82점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환경적 요인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설치된다고 해서 직원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장애인 고객이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원 배치나 호출 시스템이 필수적입니다. 정책이 기기 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작 중요한 인간적 지원이 간과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접근성 개선의 시작일 뿐, 전부가 아닙니다.

해결 방안: 현장 중심의 정책으로 나아가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소상공인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정부는 지원금 규모를 확대하고, 세제 혜택이나 저금리 대출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키오스크의 사용자 환경을 표준화해야 합니다. 업종별로 다른 조작 방식을 통일하고, 장애 유형별로 최적화된 인터페이스를 개발하면 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셋째, 장애인 단체와 소상공인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정책을 보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구의 한 장애인 단체는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등 프랜차이즈 업체에 접근성 개선을 요구하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된다면 더 실효성 있는 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 어린이 등 모든 사용자를 고려한 보편적 디자인 원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글자 크기를 12mm 이상으로 설정하거나, 색약자를 위한 고contrast 배경을 제공하는 등의 세부 기준은 모든 사용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이런 접근은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단순히 장애인을 위한 기기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기술로 자리 잡게 할 것입니다.

결론: 모두를 위한 기술, 그 첫걸음을 다시 생각하다

장벽 없는 키오스크 의무화 정책은 분명 좋은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상공인의 경제적 부담, 장애인의 실제 사용 경험과의 괴리, 그리고 졸속으로 추진된 정책 설계는 이 정책이 진정한 변화를 만들기 어렵게 합니다. 키오스크는 편리함의 상징이지만, 그 편리함이 소외된 이들에게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카페에서 키오스크 앞에 서 있을 때, 그 화면이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세요. 정책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모두를 위한 기술로 나아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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