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각과 각하 사이, 국민의힘의 기대와 내부 회의론

기각과 각하 사이, 국민의힘의 기대와 내부 회의론

기각과 각하, 법률 용어의 경계

법원 판결이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각"과 "각하"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그 의미는 분명히 다릅니다. 기각은 법원이 사건의 내용을 심리한 뒤 청구가 이유 없다고 판단해 내리는 결정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원고가 제기한 소송이 법적으로 근거가 부족하거나 사실관계가 인정되지 않을 때 기각 판결이 내려집니다. 반면, 각하는 사건의 본질을 심리하기 전에 절차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단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거나 법적 근거가 아예 부재한 상황에서 각하가 적용됩니다.

이 두 용어의 차이를 쉽게 비유하자면, 기각은 시험을 치른 뒤 답이 틀렸다고 불합격 판정을 받는 것이고, 각하는 시험장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어 문전에서 쫓겨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싼 논쟁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이 용어들을 정치적 전략의 도구로 활용하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심판, 국민의힘의 낙관론

2025년 3월 19일을 기준으로,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일정을 아직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변론 종결 후 14일 만에 기각)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11일 만에 인용) 사례와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긴 시간입니다. 국민의힘은 이 지연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며, 탄핵이 기각되거나 각하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습니다.

당내에서는 특히 "각하"에 무게를 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윤상현 의원은 최근 SNS를 통해 "소추 사유의 동일성 원칙 상실과 변론 과정에서의 절차적 위반이 명확하다"며 각하와 기각 모두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승규 의원 역시 방송에서 "비상계엄이 국헌 질서를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는 논리로 각하를 지지했습니다. 이런 발언들은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아 본안 판단을 피할 수 있다는 기대를 반영합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이 절차적 문제로 이뤄진 점은 각하론에 힘을 실어줍니다. 국민의힘은 비상계엄 선포 자체보다 국회의 탄핵 소추 과정에서 법적 요건이 미비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헌재가 이를 근거로 판단을 유보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내부의 회의적인 시각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런 낙관론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이 존재합니다. 당 핵심 관계자는 "기각이나 각하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는 부족하다"고 토로했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재판관 8인의 합의에 달려 있으며, 현재 재판관 구성이 진보 3인, 중도 3인, 보수 2인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결과 예측이 쉽지 않습니다.

일부 의원은 "헌재가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각하를 선택한다면, 비상계엄의 헌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다른 이들은 "재판관들이 정치적 압박을 의식해 신중을 기하고 있을 뿐"이라며 과도한 낙관을 경계합니다. 특히 탄핵 찬성파로 분류됐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각과 각하를 지지하는 재판관이 각각 존재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중립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기각과 각하의 정치적 함의

기각과 각하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정치적 파장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각은 비상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뜻하며, 윤 대통령에게 명분을 줄 수 있습니다. 반면, 각하는 본안 판단을 피한 결정이기에 비상계엄의 정당성 논란을 남겨둔 채 정치적 갈등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의힘은 기각 시 윤 대통령의 임기 단축 개헌을 신속히 추진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25일 헌재 최종 변론에서 "임기 후반을 개헌과 정치 개혁에 집중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는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각하가 현실화되면, 야당은 절차적 문제로 탄핵이 좌절됐다고 반발하며 여론전을 강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헌재 결정 지연의 배경

헌법재판소의 결정 지연은 단순히 법리적 논쟁 때문만은 아닙니다. 정치권과 학계에서 제기된 비상계엄의 헌법 위반 여부, 탄핵 소추의 적법성 논란 등이 재판관들의 숙고를 길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유상범 의원은 "6명 이상의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국민의힘은 야당의 헌재 압박을 "기각과 각하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의 표출"로 해석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조속한 탄핵 인용을 촉구하며 장외 집회를 이어가는 가운데, 여당은 이를 역으로 활용해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헌재의 침묵은 양측 모두에게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시민과 거리의 목소리

정치적 논쟁은 국회와 헌재를 넘어 거리에서도 뜨겁습니다. 3월 중순 광화문과 여의도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탄핵 각하 8대 0" 같은 구호가 등장했습니다. 이는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각하론이 시민들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탄핵 찬성 집회에서는 "헌재의 늑장을 규탄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SNS에 "각하 보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이중적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는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동시에 헌재의 각하 결정을 바라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이런 현상은 법률 용어가 정치적 상징으로 변모하며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불확실성 속의 기대와 우려

국민의힘은 기각과 각하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도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공존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단순히 법적 판단을 넘어 한국 정치의 향방을 가를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결국, 기각이든 각하든, 헌재의 선택은 정치적 논란을 잠재우기보다는 새로운 갈등의 씨앗을 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민의힘의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내부의 회의론이 맞아떨어질지, 그 답은 시간이 알려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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