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기업회생, 시작은 어디서부터였나?
2025년 3월, 국내 대형마트 2위로 꼽히던 홈플러스가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하면서 유통업계와 금융권에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망할 일 없다”던 대기업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그 여파로 개인 투자자들과 납품업체들이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경영난을 넘어, 투자자와 협력업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며 금융채무 상환을 유예받았습니다. 이는 약 2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간 내수 부진과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으로 오프라인 대형마트의 입지가 좁아진 점이 결정적인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여기에 MBK파트너스가 2015년 인수 이후 과도한 차입 구조로 운영해온 점도 재무 상태를 악화시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개인 투자자 피해, 어느 정도일까?
홈플러스가 발행한 자산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와 기업어음(CP) 등 단기 채권의 상환이 중단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현재 ABSTB 잔액은 약 4,000억 원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이 중 3,000억 원 이상이 개인 및 일반 법인 투자자에게 판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한 CP와 전자단기사채를 포함하면 피해 규모는 약 5,000억 원에서 6,000억 원에 이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지난 3월 5일과 10일 각각 만기를 맞은 118억 원과 325억 원 규모의 ABSTB가 상환되지 않으면서 투자자들의 불안은 커졌습니다. 최소 투자 금액이 1억 원 수준으로 비교적 접근성이 높아 기관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투자자는 노후 자금으로 이 채권에 투자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며, 피해의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기업회생 신청 직전인 2월 25일까지도 CP를 발행하며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이는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알면서도 채권을 판매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채권 발행은 오래전부터 이어진 일상적인 재무 활동”이라며 책임을 부인했지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납품업체와 입점사, 연쇄 피해로 이어지나?
홈플러스 사태는 투자자뿐 아니라 협력업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납품대금 정산 주기가 45~60일로 다른 대형마트보다 길었던 홈플러스는 이번 기업회생으로 정산금 지급이 지연되며 납품사와 입점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정산 주기를 길게 설정해 현금을 더 보유하려는 전략이었다”고 밝히며, 이는 유동성 확보를 위한 방편이었다고 분석합니다.
홈플러스는 3월 7일 법원으로부터 3,457억 원 상당의 납품대금과 입점사 정산대금 집행 승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세 사업자를 우선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 속에서, 모든 협력업체가 제때 대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합니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1월 정산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날에 갑작스럽게 회생 신청을 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더불어 일부 제조사는 납품대금 미지급 우려로 제품 공급을 중단했고, 이는 홈플러스 매장 내 상품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상품권 사용이 CJ푸드빌, CGV 등 주요 제휴업체에서 중단되며 불편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MBK파트너스와의 연결고리, 논란의 중심
이번 사태의 배후로 홈플러스의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지목되고 있습니다. 2015년 영국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6조 원에 인수한 MBK는 당시 2조 7,000억 원을 홈플러스 부동산을 담보로 차입해 조달했습니다. 이른바 LBO(차입매수) 방식으로 불리는 이 구조는 피인수 기업의 자산을 활용해 인수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이후 과도한 이자 부담이 홈플러스의 재무 상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MBK는 인수 이후 부동산 매각과 점포 축소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으나, 유통업계 환경 악화로 매각이 지연되며 부채만 늘어났습니다. 지난해 메리츠금융그룹과 1조 3,000억 원 규모의 재융자를 통해 기존 대출을 상환했지만, 개인 투자자와 국민연금 등 후순위 채권자들은 손실 위험에 노출된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은 약 6,000억 원을 투자했으며, 회생 실패 시 이를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MBK 측은 “부채보다 자산이 많아 원금 손실은 없을 것”이라며 “회생 절차를 통해 정상화되면 채무를 상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투자자와 노조는 MBK가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며 기업을 방치했다고 비난하며, 법적 대응을 검토 중입니다.
금융권과 유통업계에 남긴 교훈
홈플러스 사태는 금융권과 유통업계에 여러 시사점을 던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채권 판매 경로에 대한 전수 조사를 시작했으며, 불완전 판매 여부를 조사 중입니다. 신영증권 등 일부 증권사는 MBK와 홈플러스를 상대로 형사고발을 검토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ABSTB를 상거래 채권으로 재분류해달라는 집단 행동에 나섰습니다.
유통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사태가 ‘제2의 티몬·위메프 사태’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티몬과 위메프의 대금 지급 불능 사태로 소비자와 협력업체가 큰 피해를 입은 전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마트 등 경쟁사는 이번 기회를 활용해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지만, 전체 유통 시장의 신뢰 하락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홈플러스는 점포 매각과 구조조정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고용 불안이 커지고 있으며, 향후 9개 점포가 추가 폐점될 예정입니다. 회생 절차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더라도, 과거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