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한국, 28년 연속 OECD 성별 임금 격차 1위의 현실
한국 사회에서 “이러니 애를 안 낳지”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 경제적, 사회적 요인과 깊이 얽혀 있습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바로 성별 임금 격차입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8년째 성별 임금 격차 1위라는 불명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현재,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여성 노동자의 삶과 저출산 위기로 이어지는 고리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현상의 실태와 원인, 그리고 해결 방안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별 임금 격차, 얼마나 심각한가
2022년 기준으로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는 31.2%에 달합니다. 이는 남성 근로자가 받는 임금에 비해 여성 근로자가 약 31% 적게 받는다는 뜻입니다. OECD 평균이 11.9% 수준임을 고려하면, 한국의 격차는 평균의 거의 세 배에 가까운 수치입니다. 1996년 OECD에 가입한 이후 줄곧 1위를 유지하며, 2025년에도 이 순위는 변함없습니다. 특히 중위 임금을 기준으로 한 통계에서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29.3%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단순히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느끼는 경제적 불안과 차별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미래를 계획하는 데 큰 장애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히 남녀 간 임금 차이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성의 경제적 불안정은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지며, 결국 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귀결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합계출산율(TFR)은 0.78명으로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으며, 2025년에는 0.65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는 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1명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런 격차가 발생하는가
성별 임금 격차의 원인은 복합적입니다. 우선, 직장 내 차별이 주요 요인으로 꼽힙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 중 약 75%는 동일 기업 내에서 비슷한 숙련도를 갖춘 남녀 간의 업무 분배와 책임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여성은 관리직으로 승진할 기회가 적고,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 체계에서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으며 불리한 위치에 놓입니다. 2021년 기준 한국 상장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10% 미만으로, OECD 평균인 28%에 크게 못 미칩니다.
또한, 여성 노동자가 저임금 산업에 집중되어 있는 점도 큰 이유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제조업에서 여성 비율은 28.6%에 불과한 반면, 숙박·음식업(61.1%)과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82.1%)에서는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이들 업종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임금 수준이 낮아, 여성의 경제적 안정성을 더욱 약화시킵니다. 게다가 무급 가사 노동의 부담도 여전히 여성에게 쏠려 있습니다.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2.6배 많은 가사 노동을 감당하며, 이는 유급 노동에 집중할 시간을 줄이는 결과를 낳습니다.
저출산과 성별 임금 격차의 연관성
“이러니 애를 안 낳지”라는 말은 단순한 푸념이 아닙니다. 경제적 불평등은 출산 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2006년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경제적 지원이 있더라도 자녀를 더 낳을 의향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47.5%에 달했습니다. 2019년 매경이코노미 설문에서는 양육 비용(21.8%), 경력 단절(6.4%), 안정된 일자리 부족(5.8%) 등이 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출산 후 경력 복귀가 어려운 현실과 낮은 임금은 육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킵니다.
OECD는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성별 임금 격차 해소가 필수라고 강조합니다. 2024년 발표된 ‘OECD 2024 한국경제보고서’에서는 심리적·경제적 부담 없이 출산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권고하며, 임금 투명성 강화와 동일 임금 감사 의무화를 제안했습니다. 여성의 경제적 안정 없이는 출산율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노동 이슈를 넘어 국가 존립과 직결된 사안으로 여겨집니다.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한계
한국 정부는 저출산 대책으로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2025년부터 다자녀 가구에 대한 전기차 구매 보조금 확대(2자녀 100만 원, 3자녀 200만 원)와 K-패스 할인율 상향(2자녀 30%, 3자녀 50%) 등이 시행됩니다. 또한, 육아휴직 제도를 개선해 소득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 근본적인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효과는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민간 기업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일부 기업은 임금 공개를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기업은 연공서열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며 여성의 승진을 간접적으로 제한합니다. OECD는 직장 내 차별 제재 강화와 근로감독관 역량 강화를 제안하며, 정규직 보호 완화와 유연한 임금 체계 도입을 통해 노동 시장의 경직성을 줄일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고, 사회적 인식 개선이 동반되지 않으면 실효성을 거두기 힘듭니다.
미래를 위한 제언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구조적 변화와 함께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첫째, 기업 내 임금 투명성을 법적으로 의무화해 차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가 남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도록 문화적 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현재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2023년 기준 6.8%에 불과하며, 이는 여전히 가사와 육아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셋째, 저임금 업종에 대한 지원과 여성의 고부가가치 산업 진출을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교육 수준에서 여성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을 자랑하지만, 이를 경제적 성과로 연결시키는 데는 실패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회 전반의 양성평등 인식을 높이는 교육과 캠페인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이러니 애를 안 낳지”라는 말이 줄어들고, 출산율 회복의 실마리가 보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