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 쿼터제 해제의 배경
2025년 3월 12일, 미국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며 기존의 철강 쿼터제를 폐지했습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운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도 예외 없이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과거 한국은 2018년부터 연간 263만 톤의 철강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는 쿼터제를 유지해왔습니다. 당시 이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한 협상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쿼터제가 사라지며 한국산 철강에도 25% 관세가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는 미국 내 철강 수요의 약 20%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미국 철강업체들이 관세 효과를 기대하며 현지 유통 가격을 올린 점도 눈에 띕니다. 예를 들어, 열연강판의 미국 내 유통 가격은 트럼프 취임일인 1월 20일 톤당 750달러에서 최근 999달러로 33% 상승했습니다. 이는 한국산 철강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동시에, 관세 부담으로 수익성이 줄어드는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대미 무역흑자의 현실
한국은 최근 몇 년간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흑자를 기록해왔습니다. 2023년 대미 무역흑자는 444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달성했으며, 2024년 1~9월에도 399억 달러를 기록하며 연간 기록 경신이 예상됩니다. 이는 자동차, 이차전지, 반도체 등 주요 품목의 수출 증가와 미국의 견고한 소비 수요 덕분입니다. 특히 자동차 수출은 2023년 기준 전년 대비 44.6% 증가했으며, 이차전지 수출도 16.8%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높은 무역흑자가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에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한국과 일본의 값싼 수입품이 미국 자동차 산업을 파괴했다”며 무역 불균형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의 재선 이후 자국 우선주의 정책이 강화되며, 한국의 대미 수출 확대는 정치적·경제적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수출 확대의 걸림돌
철강 쿼터제가 폐지되며 수출 물량 제한이 사라진 점은 긍정적인 변화로 보일 수 있습니다. 과거 연간 263만 톤으로 묶여 있던 수출 한도가 풀리며, 이론적으로는 더 많은 물량을 미국 시장에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5% 관세는 큰 장벽입니다. 예를 들어, 국내 열연강판은 톤당 약 81만 원에 거래되지만, 미국으로 수출 시 물류비와 관세를 더하면 톤당 112만 원 수준으로 상승합니다. 이는 미국 내 유통 가격(약 110만 원)보다 비싸져 가격 경쟁력을 잃게 만듭니다.
게다가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라는 미국의 압박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철강은 가격 경쟁력을 갖췄지만, 무관세 시절과 비교하면 수익성이 떨어진다”며 “흑자 폭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수출량을 무작정 늘리기 어렵다”고 토로했습니다. 이는 한국 철강 기업들이 수출 전략을 재조정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중국발 저가 공세와의 경쟁
미국의 관세 정책은 중국산 철강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산 철강의 우회 수출을 막기 위해 북미산 인증 기준을 강화하는 등 추가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은 대미 수출길이 막히며 남는 물량을 다른 시장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2024년 중국의 철강 수출은 9천만 톤에 달하며, 이는 글로벌 공급 과잉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저가 철강 공세가 또 다른 위협입니다. 지난해 한국의 중국산 철강 수입량은 877만 톤으로 7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물러난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에 저가 물량을 쏟아내면, 국내 철강 기업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수 있습니다. 철강 업계는 이를 “이중고”로 표현하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 투자 확대 가능성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철강 기업들은 미국 내 직접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현대제철은 미국 남부 지역에서 전기로 제철소 건설을 논의 중이며, 포스코 역시 상공정 시설 확보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세 부담을 줄이고,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정책에 부응하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자국에 공장을 짓는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며 투자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미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현지 생산을 통해 시장을 공략하려는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입니다. 전문가들은 “수출을 인위적으로 줄일 수는 없으니, 정부와 기업이 협력해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미래를 위한 전략
철강 쿼터제 해제는 한국 철강 산업에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안겨줍니다. 수출 물량 제한이 풀린 점은 긍정적이지만, 관세 부담과 무역흑자 문제로 인해 실질적인 수출 증가는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저가 공세까지 겹치며 경쟁 환경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미국 시장 내 생산 확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LNG 시장 성장에 발맞춰 특수강판 수출을 늘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정부는 통상 협상을 통해 관세 부담을 완화하고, 기업은 현지 투자와 기술 혁신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기회로 전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