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헌재의 역사적 전환점
2025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를 내렸습니다. 이 결정은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대한민국 헌정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과거 헌재의 주요 결정에서 자주 보이던 재판관 전원일치의 흐름이 이번에 깨졌기 때문입니다. 한덕수 탄핵심판은 기각 5표, 인용 1표, 각하 2표라는 결과를 내며, 8인의 재판관 사이에서 의견이 분열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헌재가 직면한 복잡한 법적 쟁점과 정치적 맥락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이번 선고는 한덕수 국무총리의 운명뿐만 아니라, 곧 이어질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단서로 여겨집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된 헌재의 입장이 이번 결정에서 어느 정도 드러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이 글에서는 한덕수 탄핵심판 선고의 핵심 내용을 분석하고, 그 이면에 담긴 법적·정치적 함의를 살펴봅니다.
한덕수 탄핵심판의 배경과 경과
한덕수 국무총리는 2024년 12월 27일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당했습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소추(2024년 12월 14일)로부터 13일 뒤에 이뤄진 결정입니다. 탄핵 사유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방조하거나 공모했다는 혐의입니다. 둘째,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점입니다. 셋째, 비상계엄 직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공동 국정운영을 시도했다는 주장입니다. 넷째,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을 회피했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 3명의 임명을 거부한 행위입니다.
헌재는 이 사건을 2025년 2월 19일 첫 변론을 시작으로 심리했고, 약 한 달여 만인 3월 24일 선고를 내렸습니다. 87일간의 직무 정지 끝에 한덕수는 기각 결정으로 즉시 총리직과 대통령 권한대행직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헌재 내부의 의견 대립이 두드러졌습니다.
재판관 의견의 분열: 기각, 인용, 각하
이번 선고에서 헌재 재판관 8인의 의견은 세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아래 표는 각 재판관의 입장을 정리한 것입니다.
입장 | 재판관 | 인원 |
---|---|---|
기각 |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김복형 | 5명 |
인용 | 정계선 | 1명 |
각하 | 정형식, 조한창 | 2명 |
기각 의견을 낸 5인은 한덕수의 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더라도, 이를 탄핵 사유로 삼을 만큼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문형배, 이미선, 김형두, 정정미 재판관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가 위헌이라고 보았으나, 국민의 신임을 배반할 정도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반면 김복형 재판관은 임명 의무가 즉각적이지 않다고 해석하며 이 부분에서 다른 기각 의견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정계선 재판관은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특검 임명 회피가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며, 한덕수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정형식과 조한창 재판관은 각하 의견을 냈습니다. 이들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에 대통령 기준(200석 이상)의 의결 정족수가 필요하다고 보았고, 국회의 151석 기준 의결은 부적절하다고 봤습니다.
주요 쟁점 1: 의결 정족수의 논란
한덕수 탄핵심판에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킨 첫 번째 쟁점은 의결 정족수입니다. 국회는 한덕수를 국무총리 기준(재적 의원 300명 중 과반수, 즉 151석 이상)으로 탄핵 소추를 의결했습니다. 이에 대해 한덕수 측과 일부 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에 준하는 지위를 가졌으므로, 대통령 탄핵 요건인 200석 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헌재 다수 의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6인은 “대통령 권한대행은 본래 신분인 국무총리에 따른 의결 정족수를 적용해야 한다”며 국회의 의결이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정형식과 조한창 재판관은 “권한대행의 중대한 지위를 고려할 때 대통령 기준이 맞다”며 각하를 주장했습니다. 이 논란은 헌재가 권한대행의 법적 지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요 쟁점 2: 비상계엄과 헌법재판관 임명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혐의는 한덕수와 윤석열 탄핵심판의 공통된 핵심입니다. 국회는 한덕수가 계엄 선포를 방조하거나 공모했다고 주장했으나, 헌재는 이를 뒷받침할 명확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기각 의견 5인은 “계엄 국무회의 소집 등 구체적인 관여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논란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입니다. 한덕수는 국회가 추천한 마은혁, 정계선, 조한창 후보의 임명을 거부했는데, 이는 헌재의 9인 체제 구성을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기각 4인은 이를 위헌으로 인정했으나, “국민 신임 배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파면 사유로 보지 않았습니다. 김복형 재판관은 “즉시 임명 의무는 없다”며 위헌 여부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정계선 재판관은 이 문제에서 기각 의견에 동의했으나, 특검 회피를 중대한 사유로 봤습니다.
윤석열 탄핵심판과의 연결고리
한덕수 선고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의 전초전으로 여겨집니다. 두 사건은 12·3 비상계엄을 핵심 사유로 공유합니다. 헌재가 한덕수 사건에서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명확히 판단하지 않은 점은 윤석열 심판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예측을 어렵게 만듭니다. 법조계에서는 “한덕수 사건 기각이 윤석열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이는 한덕수의 관여 정도와 윤석열의 주도적 역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헌재가 비상계엄의 위헌성을 인정한다면 윤석열 심판에서 유사한 논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한덕수 사건에서 증거 부족을 이유로 기각한 점은 윤석열 심판에서도 비슷한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이는 재판관들의 평의 과정에서 더욱 명확해질 전망입니다.
헌재 결정의 정치적 파장
한덕수 탄핵 기각은 정치권에 즉각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대통령실은 “탄핵 남발이 정치적 공세임을 입증했다”며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면, 야당은 “헌재가 정의를 외면했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한덕수의 직무 복귀는 국정 공백을 해소하는 동시에, 윤석열 심판을 앞둔 정치적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습니다.
시민사회에서도 반응이 엇갈립니다. 헌재 앞에서는 탄핵 찬반 시위가 이어졌고, 결정 직후 소규모 집회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헌재 결정이 법적 판단을 넘어 국민적 신뢰와 직결됨을 보여줍니다.
맺으며: 헌재의 과제와 미래
한덕수 탄핵심판 선고는 헌재의 전원일치 전통이 깨진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는 법적 쟁점의 복잡성과 정치적 압박이 재판관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합니다. 동시에, 윤석열 심판을 앞둔 헌재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이번 결정은 헌재가 단순히 법을 해석하는 기관을 넘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자리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줍니다.
앞으로 헌재는 윤석열 심판을 통해 비상계엄의 위법성과 권한대행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헌정 질서를 바로 세우는 데 이번 선고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