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허제 해제, 강남 집값의 불쏘시개가 되다
2025년 2월, 서울시는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이하 토허제)을 전격 해제했습니다.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생 살리기"라는 명분 아래 추진한 규제 완화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만에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며 시장에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특히 잠실, 삼성, 대치, 청담동(잠·삼·대·청) 지역을 중심으로 호가가 수억 원씩 뛰었고, 실거래가도 이를 따라잡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3월 둘째 주 강남 3구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각각 송파구 0.72%, 강남구 0.69%, 서초구 0.62%를 기록하며 7년여 만에 최대 폭으로 치솟았습니다. 이는 토허제 해제가 부동산 시장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토허제는 본래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입니다. 2년간 실거주 의무를 부과하며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를 차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제 이후, 이러한 제약이 사라지자 투자 수요가 급격히 유입되며 강남 집값이 단기간에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송파구 잠실동의 리센츠 전용 59㎡는 지난 2월 23억 1000만 원에 거래되며 신고가를 경신했고, 강남구 대치동의 래미안팰리스 94㎡는 44억 원에 호가가 형성되며 해제 전보다 5억 원 이상 상승했습니다. 이처럼 토허제 해제가 강남 집값 상승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규제 완화와 가계대출의 위험한 동행
토허제 해제가 단독으로 집값 상승을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완화와 금리 인하 정책이 맞물리며 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난 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2월 가계대출은 약 4조 원 이상 증가했으며, 그중 주택담보대출이 5조 원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입니다. 특히 강남 3구를 중심으로 대출 수요가 폭증하며, 일부 은행에서는 비대면 대출 신청이 쇄도하는 '오픈런'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토허제 해제로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며 갭투자가 가능해졌고, 낮아진 대출 금리가 이를 부추겼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대출 급증이 부동산 시장뿐 아니라 가계 재정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금융위원회는 급등하는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은행권에 대출 총량 억제를 요구했지만, 이미 풀려난 수요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입니다. NH농협은행은 주택담보대출 대신 전세자금 대출을 축소하며 엉뚱한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토허제 해제와 대출 완화가 동시에 이뤄진 시점이 시장 과열을 가속화했다"며 "정책의 조율 부족이 현 상황을 초래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오세훈의 정책 번복, 신뢰도에 금 가다
토허제 해제 후 불과 35일 만에 서울시는 다시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오세훈 시장은 3월 17일 "집값 상승이 비정상적으로 과도하면 재지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며 시장 진화에 나섰습니다.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도 "시장 과열이 확인되면 즉시 토허제를 재지정하겠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에 따라 강남 3구와 마포, 용산, 성동구(마용성) 등 주요 지역에 대한 현장 점검이 강화되고, 허위 매물과 가격 담합 등 불법 행위 단속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급작스러운 번복은 정책의 일관성을 의심받게 만들었습니다.
오 시장은 토허제 해제를 발표하며 "민생을 살리고 재산권 침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강남 집값만 부양하며 서울 외곽 지역과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결정이 2027년 대선을 앞둔 정치적 계산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준비되지 않은 졸속 정책이 시장 혼란을 초래했다"며 "규제 완화의 명분이 부족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민들 사이에서도 "풀었다 묶었다 반복하며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강남만 웃고, 외곽은 침체 속으로
토허제 해제의 여파는 강남 3구와 한강변 지역에 집중되었습니다. 마용성 지역도 상승세를 타며 거래량이 증가했지만, 노원, 도봉, 강북구 등 서울 외곽 지역은 여전히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부동산R114 조사에 따르면, 2025년 1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3억 8289만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는 강남권과 같은 상급지의 상승이 주도한 결과입니다. 반면, 노도강(노원·도봉·강북) 지역은 거래량도 미미하고 가격 변동도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토허제 해제로 강남과 같은 1급지에 수요가 몰리며 양극화가 더욱 두드러졌다"고 분석합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상급지가 전체 평균가를 끌어올렸지만, 서울 전역으로 온기가 퍼지기는 어렵다"고 전망했습니다. 이는 곧 토허제 해제가 서울 전체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보다는 특정 지역의 집값만 띄우는 데 그쳤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지방의 경우 공실률이 증가하며 침체가 깊어지는 가운데, 강남만의 독주가 시장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책임 논란, 누구에게 화살이 향하나
현재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둘러싼 책임 공방이 뜨겁습니다. 서울시는 "집값 상승은 토허제 해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리 인하와 공급 부족 등 복합적 요인 때문"이라며 방어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 공급 부족은 시장 과열의 배경으로 꾸준히 거론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토허제 해제 시점이 이들 요인과 겹치며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권대중 서강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허제를 너무 성급하게 풀었다"며 "대출 완화와 맞물리며 강남 집값에 기름을 부은 꼴"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정부와 서울시는 공동 대응을 통해 책임을 분산하려는 모양새입니다. 국토교통부는 "토허제는 지자체의 자율성에 맡긴 사안"이라며 한발 물러섰고, 서울시는 "필요하면 즉시 재지정하겠다"고 약속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시장 참여자들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졌다"며 불신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 공인중개사는 "호가가 오르고 거래가 늘어나는 와중에 갑작스런 재지정 얘기가 나오니 매도자와 매수자 모두 혼란스럽다"고 토로했습니다. 결국, 이번 사태의 책임은 오세훈 시장의 과감한 결단과 이를 뒷받침한 정부의 느슨한 관리 체계에 있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전망과 남은 과제
토허제 해제로 촉발된 강남 집값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공급 부족과 금리 인하 여파로 강남 아파트 가격은 올해 내내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이 상승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전망도 많습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6월까지 강보합세를 유지하다 하반기부터 소폭 상승할 것"이라며 "토허제 해제의 영향은 부분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부와 서울시는 시장 안정화를 위해 거래 동향 모니터링과 투기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은 "규제 완화 대신 주거 취약 계층을 위한 매입임대주택 공급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토허제 해제가 남긴 시장 혼란을 수습하고, 균형 잡힌 부동산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