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끝나지 않은 악몽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삶의 안식처입니다. 그런데 이 안식처를 노리는 전세사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 어떨까요?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뉴스에서만 나오는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3년 6월부터 시행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 일명 전세사기 특별법은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2025년 5월 31일 만료를 앞두고 있었고, 최근 국회에서 2년 연장이 결정되었습니다. 과연 이 연장만으로 전세사기라는 사회적 재난을 막을 수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전세사기 특별법의 연장 배경과 한계, 그리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전세사기 특별법, 왜 연장이 필요했나
전세사기는 임대인이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거나, 고의로 부동산을 처분해 피해를 입히는 범죄입니다. 이 문제는 특히 2020년대 초 부동산 시장의 급등과 함께 심각해졌습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3년 6월 특별법 시행 이후 2025년 4월 기준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28,899명에 달합니다. 놀라운 점은 매달 약 1,500건의 피해 신청이 접수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전세사기가 단발성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 여러 지원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피해 주택을 경매나 공매로 매입해 발생한 차익을 피해자에게 지급하거나, 최대 10년간 공공임대주택을 무상 제공하는 제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최우선 변제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최장 10년 무이자로 대출해주는 금융 지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원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인정 요건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해 많은 이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2025년 4월 16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는 특별법의 유효 기간을 2027년 5월 31일까지 2년 연장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여야가 피해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인식하고, 조기 대선으로 인한 입법 공백을 우려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연장 결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정안은 2025년 5월 31일까지 최초 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한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즉, 6월 1일 이후 계약한 세입자는 전세사기를 당해도 특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피해자들에게 “이제는 알아서 조심하라”는 메시지로 들릴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 무엇이 문제인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단순히 법의 연장만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보다 실효성 있는 구제와 근본적인 예방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는 “특별법은 피해자들에게 유일한 동아줄”이라며, 연장뿐 아니라 피해자 인정 요건 완화와 제도 개선을 촉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피해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임대인의 사기 의도가 명확히 입증되어야 하지만, 이는 법적 절차가 길고 복잡해 많은 피해자들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대구 상인동의 한 다가구주택에서 2024년 말 발생한 전세사기 사건은 33가구, 피해 금액 22억 원에 달했습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청년층으로, 전 재산을 잃고 경매 절차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특별법의 피해자 인정 신청을 준비했지만, 법이 만료되면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철빈 대책위원장은 “피해를 인지하고 집단적으로 대응하는 데 최소 2년 이상 걸린다”며, 3년 이상의 연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피해자 인정률의 하락입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특별법 시행 초기 피해자 인정률은 70~80%였지만, 최근에는 40%대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수사 과정에서 검찰 송치 이후에나 피해자로 인정받는 사례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은 “수사가 시작되었는데도 불인정되면 무엇을 더 입증해야 하느냐”며 절망감을 토로합니다.
2년 연장, 충분한 해결책일까
특별법의 2년 연장은 피해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조치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전세사기는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느슨한 법적 규제에서 비롯됩니다. 예를 들어, 임차권 등기 의무화나 전세가율 규제 같은 예방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피해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 단체들은 몇 가지 구체적인 개선안을 제안했습니다. 첫째, 피해자 인정 요건을 완화해 ‘정당한 사유 없이 1개월 이상 보증금이 미반환된 경우’도 피해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둘째, 외국인이나 일시적 1주택자 등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지원 대상에 포함해야 합니다. 셋째, LH의 피해 주택 매입 절차를 개선해 피해자들이 더 많은 선택권과 정보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자체가 임대인의 동의 없이 피해 주택을 긴급 보수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제안들은 단순히 피해자를 구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세사기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임차권 등기 의무화는 세입자와 집주인 간 정보 비대칭을 줄여 사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서는 이런 근본적인 대책에 대한 논의가 미진한 실정입니다.
전세사기 피해, 얼마나 심각한가
전세사기의 규모와 피해는 숫자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아래 표는 최근 전세사기 피해 현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항목 | 내용 |
---|---|
피해자 수 | 28,899명 (2025년 4월 기준) |
월평균 신청 건수 | 약 1,500건 |
피해자 인정률 | 초기 70~80% → 최근 40%대 |
LH 매입 주택 | 307건 (2025년 3월 기준) |
보증금 회복률 | 78% |
이 표에서 보듯, 피해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인정률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피해자 구제 시스템이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LH가 매입한 주택은 전체 피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며, 보증금 회복률도 모든 피해자를 만족시키기에는 미흡합니다.
오해와 진실, 전세사기는 개인의 책임인가
전세사기에 대해 흔히 오해하는 점 중 하나는 “세입자가 꼼꼼히 확인하지 않아서 당했다”는 인식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전세사기는 고도로 조직화된 범죄로, 임대인이 허위 서류를 제출하거나 부동산 중개인이 공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인천 미추홀구의 ‘건축왕’ 남모 씨는 2,700채에 달하는 대규모 사기를 벌였지만, 징역 7년에 그쳤습니다. 피해자 중 4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벌은 턱없이 가벼웠습니다.
이런 사례는 전세사기가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 범죄임을 보여줍니다. 세입자가 계약 전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부동산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더라도, 임대인의 고의적인 속임수를 완벽히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정부와 국회는 피해자 책임론을 넘어, 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전세사기 특별법의 2년 연장은 피해자들에게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전세사기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예방과 구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첫째, 임차권 등기 의무화와 전세가율 규제를 통해 사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합니다. 둘째, 피해자 인정 요건을 완화하고,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포괄하는 포용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전세사기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호소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하고 정의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외침입니다. 전세사기는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회적 재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눈물짓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