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을 앞둔 군의 움직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짧았던 계엄 기간은 해제되기까지 불과 몇 시간에 불과했지만, 그 배후에서 군이 어떤 준비를 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최근 드러나며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특히 군이 시신을 임시 보관하는 데 사용되는 '영현백'을 평소보다 3천 개 이상 추가로 확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그 이유를 궁금해합니다. 이 물량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비정상적인 숫자입니다. 과연 무엇이 군을 이렇게 움직이게 했을까요? 이 글에서는 그 배경과 의미를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영현백과 종이관, 무엇을 의미하나
영현백은 시신을 임시로 보관하거나 이동할 때 사용하는 방수 재질의 가방입니다. 주로 전시나 대규모 재난 상황에서 활용되며, 군에서는 전사자 처리를 위해 비축해둡니다. 2024년 초 육군의 영현백 보유량은 약 1,883개 수준이었고, 이는 1년 내내 큰 변동 없이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해 12월, 이 숫자가 갑작스레 4,940개로 늘어났습니다. 이는 약 3,114개의 영현백이 새로 추가된 결과입니다. 이 시점이 비상계엄 선포와 맞물리자, 자연스럽게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더불어 지난해 8월, 2군단 소속 군무원이 서울의 한 종이관 제조업체에 연락해 대량 구매를 문의한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종이관은 골판지로 만든 간이 관으로, 시신을 운반하거나 임시 매장할 때 사용됩니다. 당시 군무원은 "사망자가 3천 명 수준이라면 어떻게 되겠냐"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고, 1천 개 구매 시 가격까지 알아봤습니다. 비록 이 구매는 실제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연간 사망자가 100명 미만인 군에서 이런 문의가 나온 것은 이례적입니다.
12.3 비상계엄과 연결된 의혹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거치지 않고 비상계엄을 선포했습니다. 이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절차를 무시한 결정으로, 정치적 반발과 국민적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계엄이 해제된 후에도 그 배경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드러난 영현백과 종이관 관련 정황은 새로운 불씨를 지폈습니다.
특히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서 발견된 내용이 이 의혹을 더욱 키웠습니다. 수첩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주요 인사들을 'A급 수거 대상'으로 분류하고, 처리 방안으로 "수집소 이송 중 사고, 가스, 폭파" 등의 표현이 적혀 있었습니다. 수집소 중 하나로 강원도 화천 오음리가 언급되었는데, 이곳은 종이관 문의를 한 2군단 산하 부대가 위치한 지역과 일치합니다. 이로 인해 군이 대규모 사망자를 예상하고 준비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군의 해명과 반론
논란이 커지자 육군은 공식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영현백 추가 구매는 2022년 합동참모본부의 지침에 따라 2024~2028년 중기 계획에 포함된 물량일 뿐, 비상계엄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입니다. 구체적으로, 2024년 12월 11일에 납품이 완료되었다며, 이는 계엄 선포(12월 3일) 이후의 일이라 관련성을 부인했습니다. 종이관 문의 역시 "을지 자유의 방패 훈련 중 전시 사망자 처리 방안을 논의한 아이디어일 뿐 실효성이 없어 중단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남습니다. 연간 사망자가 100명도 안 되는 군에서 왜 갑자기 3천 개 이상의 영현백이 필요했을까요? 게다가 12월 납품이라 하더라도, 계약과 준비 과정은 그보다 훨씬 앞서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 관계자조차 과거 5년간 민간 업체에서 관을 구매한 전례가 없다고 밝힌 점도 이 상황을 납득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기
대한민국에서 계엄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규모 사망자를 전제로 한 준비는 드물었습니다. 1979년 12.12 사태나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군의 움직임은 논란이 되었지만, 사전에 시신 처리를 위한 물품을 대량 확보했다는 기록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반면, 이번 사태는 구체적인 물량과 시점이 드러나며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만약 군이 비상계엄을 통해 무력 충돌이나 강경 진압을 계획했다면, 이는 역사적으로도 유례없는 준비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과거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처럼 대규모 학살을 연상케 한다는 비판도 나오는 이유입니다. 물론 이는 아직 추측일 뿐이지만, 영현백과 종이관의 존재는 단순히 무시할 수 없는 단서로 남아 있습니다.
국민이 던져야 할 질문
이번 사건은 단순한 물품 구매를 넘어, 국가와 국민 사이의 신뢰 문제로 이어집니다. 군이 왜 이런 준비를 했는지, 누가 이를 지시했는지, 그리고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필요합니다. 비상계엄 선포 당시 실탄 1만 발과 헬기 12대가 동원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던 만큼, 군의 의도가 단순한 훈련 차원을 넘어섰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진실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철저한 조사와 투명한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사건은 또 하나의 미해결 과제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실을 파헤칠 때입니다.
미래를 위한 교훈
12.3 비상계엄은 짧았지만, 그 파장은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군의 역할은 국민을 지키는 것이지 위협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영현백 3천 개의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국가 권력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번 일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그 답은 시간이 지나며 드러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단 하나, 진실을 요구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